이세계 황제의 마흔두번째 후궁이 되었다.

“없는 것 같은데?”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해원이 삐딱하게 말했다. 구석구석 한참을 뒤져도 팔찌는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오기 전에 했고, 돌아가서 없었는데?” 이상하다고 말하는 엘시아의 목소리에는 전혀 다급함이나 당혹스러움 같은 감정이 없었다. 자칫했다간 춘삼에게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평온하기만 했다. “오다가다...

해원은 ‘폐하 형아’가 얹어주는 반찬을 받아먹으며 즐거운 점심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에는 다음 일정 때문에 알현실로 가는 이안을 배웅했다. 오늘도 알차게 한 시간을 보낸 해원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방에 들어온 해원은 어딘가 고장 난 사람처럼 소파에 앉아 헤실거렸다. 제 이름을 부르던 이안을 떠올리면 배싯, 푸싯, 자꾸 튀어나오는 웃...

해평이 떠나고 난 뒤, 해원은 머리가 복잡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쉽고 편하게만 살고 싶은데. 왜 이런 사건에 얽힌 건지. 성 해원의 몸에 빙의한 덕에 이안을 만나고 행복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지만, 왜 또 하필이면 성 해원이어서. 어쩌면 이 행복이 계속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에휴우.” 해원이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한숨을 푹 ...

“해원아. 잘 지냈느냐.” 지난번 건국제 이후 넉 달 만에 보는 동생이었다. 해평에겐 그 기간이 퍽 길었는지 애틋하고 반가운 눈치였다. 그러나 그 건국제 이후 해원은 태어나 가장 행복하고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매일 밤, 오늘 하루 이안과 보냈던 시간을 돌이키며 벅찬 행복감을 베고 잠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손을 잡고 별을 보았던 밤 같은, 평생토록 기억에...

“그래? 그럼 어디 보자. 정말 괜찮은지.” “우왁!”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 상체를 일으키려던 해원을 이안이 밀어 그대로 다시 엎드리게 했다. 그러고는 해원의 바지를 잡아 내렸다. 졸지에 엉덩이를 까게 된 해원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멍 색이 더 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색이 빠지며 보라색과 녹색이 얼룩진 토실한 엉덩이를 보고 ...

“어? 어디 갔지?” “왜 그래?” “분명 갈아입으실 속옷을 챙겨 왔는데, 없어. 오다가 떨어뜨렸나?” “잘 찾아봐. 제일 안쪽에 감싸서 들고 왔을 텐데 어떻게 떨어뜨렸겠어. 깜박하고 안 챙긴 거 아니야?” “아닌데. 챙겼는데. 이상하네…….” 에델린과 해원의 사고로 후궁들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녀들을 대신해 탈의실로 드레스를 챙기러 온 궁녀...

“성 빈!” 이안이 해원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해원의 낙마 소식에 단숨에 달려온 것이었다. 지난번 급체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에, 소식을 전한 태감마저 놀랄 정도였다. “앗, 폐하. 저 괜찮아요! 별로 안 다쳤어요!” 놀란 기색이 역력한 이안을 향해 해원이 얼른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해원의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닦아주세요.” 어리광을 부리면 웬만하면 들어주는 이안 덕에 해원의 어리광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황제에게 제 입술을 닦아 달라 말하며 해원이 입술을 주욱 내밀었다. 깜찍한 해원의 행동에도 이안은 별말 없이 손수건을 들어 해원의 입가로 가져갔다. “으응?!” 가만히 입술을 내밀고 기다리던 해원이 놀란 소리를 냈다. 입가를 문지를 천의 감각을 예상했는데,...

“오는 길에 엘시아 님을 마주쳤는데…….” 콩고물 단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방금 겪은 일을 떠들어 댔다. “어머. 정말요?”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후궁들이 지젤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아무렇지 않게 그 시선을 받아낸 지젤이 평소처럼 웃으며 입을 열었다. “회화 수업이 아니라 안 불렀어요~ 지난번에 그림 수업이 아니라고 그냥 돌아갔잖아. 오늘도 그냥 돌아가...

“아뇨. 태워주세요ー.” 저를 염려하는 이안을 눈치챈 해원은 그 기회를 냅다 잡았다. 해원이 애교를 부리듯 말꼬리를 늘이며 이안에게 치댔다. 이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리의 위로 오르려 했다. 전에 제 말에 해원을 태웠던 것처럼 위에서 잡아주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안을 해원이 말렸다. “어어? 안 돼요! 마리는 저 말고 아무도 안 태워요.” 해원의 말대로...

“와ー, 딸기가 진짜 싱싱해요.” 춘삼이 생딸기가 샌드 된 다쿠아즈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맛있어요.” 보나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단 음식이 들어가서인지 항상 어두워 보였던 표정에 약간이나마 행복감이 스몄다. 보나는 해원의 배려로 벌써 며칠째 춘삼과 간식 시간을 갖고 있었다. 승마장에서 이안과 해원의 수업이 끝나면 말을 마구간에 데려다 놓고,...

“얘야? 우와아ー.” 마구간에 도착한 해원이 제 말을 보고 감탄했다. 지난번에 크고 멋지다고 생각했던 휴나 펠릭스의 말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늠름한 크기도, 잘 발달한 근육도, 윤기 흐르는 진한 갈색의 털도, 멋지게 늘어진 갈기도.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말은 오랫동안 해원을 기다려 왔던 듯, ...